(7-3) VR(가상현실)과 AR(증강현실)의 미래

7장 마지막으로 게임과 콘텐츠 산업의 지평을 넓혀줄 VR과 AR에 대해 알아보자. VR(Virtual Reality)은 가상현실, AR(Augmented Reality)은 증강현실로 번역된다. 우선 가상현실이란 현실이 아닌 가상세계가 마치 현실인 것처럼 인식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컴퓨터가 만들어낸 인공적 시공간을 사용자로 하여금 현실인 것처럼 인식하게 하고, 그 안에서 사용자 또는 그 아바타가 가상의 대상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도록 함으로써 몰입감을 제공하는 기술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반면 증강현실은 현실과 가상세계를 혼합했다는 의미에서 혼합현실(Mixed Reality)이라고도 불리는데, 사람이 직접 보고 느끼는 현실세계에 컴퓨터 장치가 만드는 가상의 이미지나 정보를 추가해 보여주는 것을 뜻한다. VR과 AR 중에서도 좀 더 세부적인 분류가 가능한데, 이 책에서는 이러한 기본 개념 정도를 설명하고 실제로 일본 기업에 의해 구현되고 있거나 개발 중인 사례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wuestenigel의 『플레이스테이션 VR』

VR이 가장 널리 활용되는 곳은 역시 게임 분야다. 지난 2016년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PS) VR’을 주요국 시장에 내놓으면서 실질적인 VR 시대를 열었는데 PSVR은 소니 게임기 본체인 ‘PS4’에 연결한 뒤 머리에 쓰고 가상의 입체영상을 보는 헤드셋 제품이다. PSVR 출시 이전에도 타사 VR용 헤드셋이 있었지만 고가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 못했고 소프트웨어도 많지 않았지만 PSVR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출시된 후 과거 인기 게임을 3D 입체영상으로 즐길 수 있도록 VR 게임 소프트웨어를 꾸준히 공급함으로써 큰 인기를 얻었다. * PSVR은 2019년까지 전 세계에서 500만대 이상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VR게임이 개발된 초기에는 이 헤드셋을 사용해 혼자 컨트롤러를 조작하면서 게임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점차 여러 플레이어 간 게임 대결이 가능하거나 온라인 상에서 다수의 참가자와 게임을 할 수 있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또 가상세계에서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를 주변 사람들이 플레이어와 동일한 가상세계 안에서 관람할 수 있는 시스템도 일본의 한 스타트업에 의해 개발되고 있다. 이 같은 시도는 VR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가 헤드셋에 의해 주변 사람들과 완전히 분리되는 단점을 보완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VR 게임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VR 게임과는 조금 다른 발전을 이룬 것이 IT 기업 ‘도왕고’가 제공하는 ‘버추얼캐스트’다. VR 헤드셋을 사용해 들어갈 수 있는 가상공간에서 사용자 자신이 유명 만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돼 다른 참가자와 어울려 대화할 수 있는 서비스인데 단순히 컨트롤러로 캐릭터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동으로 캐릭터를 움직이면서 다른 캐릭터에 접근하거나 가상세계를 이동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현실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경험을 가상현실 속에서 체험할 수 있는 색다른 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버추얼 캐스트 제공업체의 홍보 화면

한편 2020년대 초고속 5G 통신이 보편화되는 것을 계기로 VR 기술은 한층 각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본래 VR 영상은 대용량 그래픽 데이터를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만큼 그에 걸맞은 고성능 컴퓨터와 통신 환경이 필요하다. 기존에는 VR 영상을 보기 위해 PS4 등의 장치와 VR 헤드셋을 유선으로 연결했는데, 이는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데 상당한 제약 요소가 돼 왔다. 5G 통신 환경 하에서는 VR 헤드셋을 고속 무선통신으로 연결해 보다 자연스럽게 VR 영상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일본 이동통신사업자 NTT도코모와 VR 전문 신생기업 ‘크레센트’는 이를 직접 실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이들은 춤추는 댄서의 모습을 16대의 카메라로 다양한 각도에서 중첩 촬영하고, 이 영상 데이터를 VR 헤드셋을 사용한 원격지 관람자에게 실시간 무선 전송했다. 이를 통해 관람자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무용수의 공연을 VR 영상으로 볼 수 있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관람자들이 몸을 움직임으로써 무용수에게 다가가거나 무용수를 보는 시각을 바꿀 수 있었다는 것이다. 5G 무선통신과 VR 기술이 접목된 이 같은 시도가 보편화되면 앞으로는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이나 운동선수의 경기를 현장에 가지 않고도 가까운 거리에서 또 원하는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실제 목적으로 VR을 활용하려는 사례도 늘고 있다. 사무기기 제조사인 ‘리코’ 자회사는 VR 공간에서 직원들이 회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회의에 참석하는 직원들은 가상공간에서 아바타로 참여하기 때문에 상하관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밝히는 아이디어 회의 때 특히 유용하다고 한다. 또 가상공간을 필요에 따라 공장이나 매장 등으로 설정해 현실감을 높이거나 회의를 보조하는 자료나 화이트보드를 띄울 수도 있어 능률적인 회의가 가능하다는 평가다. 정보통신 대기업 ‘NEC’도 유사한 VR 회의 시스템을 개발 중인데 여기에 인공지능까지 도입하려는 것이 특징이다. 이 시스템에서는 인공지능이 회의 참가자로서 회의를 진행할 수도 있고 질문에 답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도 있다. NEC는 이 시스템의 완성도를 높여 기업을 대상으로 판매할 계획이다. 비행기 조종훈련은 오래전부터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뤄졌지만 앞으로는 VR을 통한 교육훈련이 다양한 분야에서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한 건설사는 인부들에 대한 안전교육에 VR을 활용하고 있는데, 교육장에 최소한의 구조물을 설치해 건설현장처럼 꾸미고 이곳에서 VR 헤드셋을 착용함으로써 마치 지상 수십m 위 위험한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작업자는 건축자재를 운반하던 중 실수로 추락하는 체험을 VR 영상을 통해 생생하게 체험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현장에서의 안전의식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회사 측은 이 같은 체험교육으로 실제 사고율을 절반 이하로 줄이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 헤드업 디스플레이 예 – Photo by seanavigatorsson

증강현실(AR)은 현실과 가상세계를 융합시킨다는 점에서 보다 현실적이고 비즈니스 친화적이다. 초보적인 AR의 예를 들면 자동차 운전자 보조 시스템으로 일부 차량에 적용되고 있는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들 수 있다. 현재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차량 앞유리에 속도를 표시하거나 간단한 내비게이션 기능으로 좌회전 또는 우회전 등의 방향을 표시하는 수준이다. 미래운전자보조시스템은 진화된 AR 기술을 적용해 운전자 시야에 나타나는 다양한 시설물과 위험물에 대한 정보를 문자나 기호로 실시간 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독일 자동차 부품업체인 보쉬 등이 적극 개발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도 도요타자동차그룹의 덴소를 비롯해 일본정기 등이 관련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이 시스템에서 핵심 기술은 운전자가 보는 대상물의 위치와 앞유리에 표시되는 정보의 위치가 겹치게 하는 것과 대상물과 정보를 눈으로 볼 때 초점거리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해당 기술의 내용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덴소는 대상물을 인식하는 차량 외부 카메라와 운전자 시선을 인식하는 내부 카메라를 활용해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니혼정기는 자동차 앞유리에 AR 정보를 표시하는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차량 양쪽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위험물에 대해 즉시 경고 표시를 함으로써 안전운전에 도움을 준다는 계획이다. 한편 AR 기술로 무장한 내비게이션이 더욱 발전할 경우 미래에는 운전자의 눈에 보이는 실제 거리마다 모든 안내 정보가 겹쳐 나타남으로써 보다 간편한 운전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AR은 다양한 응용 가능성으로 인해 세계 최강 IT 기업들이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13년 화제를 모으며 구글이 출시한 ‘구글 글라스’는 안경 너머 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사용자 시야에 추가한다는 의미에서 AR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다. 구글글래스는 또 음성명령만으로 카메라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등 획기적인 웨어러블 기기로 주목받았으나 사생활 침해 우려와 수요 부족 등의 문제로 개인 대상 판매는 중단됐고 2017년에는 작업자 생산성 증대를 위한 기업용 모델이 개발돼 미국 보잉과 DHL 등의 회사에 판매됐다.

출처 : 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

출처 : 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

홀로그래피를 이용한 가상의 3D 이미지

가상 이미지와 관련해 홀로그램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봐왔던 VR이나 AR, MR은 전용 헤드셋 또는 안경이 필요한데 홀로그램은 이런 장치 없이 육안으로 3D 입체 영상을 볼 수 있다. 홀로그램에도 진정한 의미의 3D 홀로그램과 2D를 3D로 인식하는 유사 홀로그램 두 종류가 있는데, 후자의 예로는 수년 전 제품화됐지만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진 ‘3D TV’가 있다. 이 유형은 두 개의 2D 영상을 특수 안경을 통해 볼 때 우리 두뇌가 이를 3D로 합성해 인식*하는 것으로 장시간 시청할 경우 두통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한다. 또 다른 방식의 유사 홀로그램은 투명스크린 등의 장치를 이용해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으로 역시 진정한 의미의 3D 홀로그램은 아니다. 다만 이 방식은 비교적 쉽게 입체영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엔터테인먼트 목적으로 가끔 시도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과거에 이 방식으로 K팝 공연이 진행된 적이 있는데, 일본에서도 전통 예술가 가부키 공연을 유사 홀로그램으로 구현하려는 실험이 있었다. 통신기업 NTT와 가부키 공연기획사인 쇼치쿠가 공동으로 진행한 이 실험에서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된 가부키 공연을 여러 대의 4K 카메라가 촬영하고 이 영상을 메쉬 재질의 이중 스크린에 투사함으로써 관객들이 무대의 입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유사 홀로그램은 얼마나 정교한 영상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입체감 실현 정도에 성패가 갈리지만 시간과 장소를 넘어 어느 정도 실감나는 현장 체험을 제공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 이런 영상을 유사 홀로그램으로 분류하지 않고 단순히 3D 입체영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영화에서 보았듯이 공중에 3D 영상을 그려내는 진정한 의미의 홀로그램은 그 원리나 구현이 매우 어려운 과학의 영역이다. 우리가 물체를 볼 수 있는 것은 물체가 반사되는 빛을 뇌가 인식함으로써 가능한 것인데 홀로그램이란 쉽게 말해 이 반사광의 세기와 파장 및 위상 정보를 모두 기록*해 놓고 이를 재생함으로써 그 물체가 입체적으로 다시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반사광 정보를 필름을 사용해 기록하는 아날로그 홀로그램 기술은 어느 정도 확립돼 있지만 기록해야 할 정보량이 방대해 현실적으로는 아주 작은 홀로그램 하나를 만들 수 있을 뿐이다. 현재 과학자들은 이 정보를 컴퓨터를 사용해 기록하고 재생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지만 의미 있는 크기의 디지털 홀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오늘날 이용 가능한 슈퍼컴퓨터에서도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일본에서는 국립연구법인 정보통신연구기구를 비롯해 도쿄대, 쓰쿠바대 등이 홀로그램을 연구하고 있는데 이들은 2016년 공동 개발한 프로젝터를 사용해 간단한 디지털 홀로그램 표현에 성공했다. 또 파나소닉 같은 민간 기업들도 장기적 과제로 홀로그램을 재생하는 디스플레이 개발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실제로는 레이저광을 물체에 조사해 반사되는 ‘물체광’과 제2의 ‘참조광’이 서로 만나 만들어내는 간섭무늬를 기록하는 것인데, 이로써 빛의 세기와 파장, 위상정보가 기록된다고 한다. 컬러 사진은 빛의 세기와 파장 정보만을 기록한 것으로 홀로그램은 위상 정보까지 기록함으로써 입체 영상을 재생할 수 있게 된다.

의료 현장에서 홀로그램을 이용하는 예시 이미지

홀로그램 관련 기술은 단순히 오락이나 예술에 이용될 뿐만 아니라 첨단의료와 같은 산업 분야에서도 활용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 홀로그램이 헝가리 과학자들에 의해 처음 발명된 것도 전자현미경을 개량하려는 연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후 이 원리를 이용한 홀로그래피 현미경도 개발됐다. 유사 홀로그램이긴 하지만 현재 의료 분야에서는 병원에서 널리 사용되는 CT 사진을 이용해 환부 입체 영상을 만들 수 있었고, 이를 수술이나 교육 등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또 홀로그램은 장차 DVD나 블루레이 디스크를 훨씬 뛰어넘는 대용량 데이터 저장 기술에 응용될 것으로 예상되며, 나아가 홀로그램을 연산 소자로 사용하는 이른바 광컴퓨터의 개발 가능성도 연구되고 있다. 홀로그램을 그저 신기한 3차원 입체영상이 아닌 미래 기술 혁신을 가져올 첨단 과학 분야 중 하나로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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